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도가와 란포 (문단 편집) == 생애 == [[간사이]]에 속하지만 나고야권역이기도 한 일본 [[미에현]] [[나바리시]]에서 태어나, 3살 때 아버지의 전직(轉職)으로 [[나고야]]에서 자랐다. 이 시절, 일본은 발 빠른 근대화가 진행중이었다. 도시에는 높은 빌딩이 세워지고, 노면 전차가 달리고, 인구가 도시에 집중해 도시화가 이뤄지는 시기로 나고야도 그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모더니즘]]이 유행하고 대중 문화가 발달, 활자 인쇄물이 넘쳐나고 신문 소설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다. 9살 때 어머니가 신문소설을 읽어주면서 문학에 흥미를 가졌다. 대학생 시절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과 [[황금충]]을 읽고 추리소설 장르에 빠졌다. [[셜록 홈즈]] 인기로 대표되는 영미권과는 달리 일본에는 추리소설을 실어 줄 잡지조차 없었고, 1916년(21살)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추리소설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미국에 갈 돈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해야 했다. 대학 재학중에 트릭을 중시한 첫번째 단편 [화승총]을 써서 잡지에 투고했지만 게재되지는 못했다. ||● (란포가 말하는) 탐정 소설의 정의 탐정 소설이란, 주로 범죄에 관한 난해한 비밀이, 논리적으로, 서서히 풀려가는 경로(徑路)의 재미를 주안(主眼)으로 하는 문학이다. (평론집 [환영성]에서) ──探偵小説とは、主として犯罪に関する難解な秘密が、論理的に、徐々に解かれて行く経路の面白さを主眼とする文学である。(「幻影城」より||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오사카]]의 무역회사에 취직했지만 1년 만에 퇴직하고, 이후 신문사의 기자, 헌책방 경영, [[라멘]] [[야타이|포장마차]] 운영 등 20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TMI]]지만 [[소년탐정단|소년탐정 시리즈]]의 [[괴인 이십면상]]이 20인 이유도 스무가지 직업을 가졌던 작가의 경험을 반영했다고 한다. 탐정사무소에 취직을 하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면접에서 떨어진 일화도 있다. [[1920년]]에 창간하여 도시에 사는 [[인텔리]] 청년층에게 인기가 있었던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잡지 [신청년(新青年)](1920~1950)은 특집으로 해외 추리소설을 번역 소개한 증간호를 발간했다. 27살에 실업 상태였던 히라이 타로는 이것을 읽고 창작 의욕이 되살아났다.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충]]'을 오마쥬한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본격적인 논리를 중시한 암호풀이 단편 《2전짜리 동전(二銭銅貨)》(1923)을 며칠 만에 써서 잡지에 투고,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때부터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후 2년간 단편 28편, 장편 4편을 쓴다. [[1925년]]([[치안유지법]]이 발동) 1월에는 [[아케치 코고로]]가 첫 등장하는 단편 을 선보였다. 이윽고 [[본격]], [[엽기]], [[그로테스크]], [[괴기]], [[판타지|환상]], [[서스펜스]],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쓰면서, 순문학에 비해 평가받지 못했던 대중 통속 소설 장르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 인간의 은밀한 욕망, 살인충동, 변태성욕 등을 다룬 그의 많은 작품이 검열 대상(주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이 되어 부분 삭제당하고, 토막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범인으로 의심받기도 했고, 집에 잘린 목을 감춰두고 있다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루머에 시달렸다. 란포는 자괴감에 시달렸고 한때는 절필을 선언하고 일본 전역을 방랑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본래 [[본격 미스터리]] 정통파 추리소설을 쓰고 싶어했지만,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대중은 에로와 그로테스크한 자극적인 소설을 원하고 인기가 있었다. [[다이쇼]] 시절은, 근대화의 빛과 어둠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국민들의 심리적인 불안함을 해소해 줄 자극적인 오락거리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소년 잡지 편집자가 권해서 쓰게 된 것이 아동 대상으로 쓴 '소년 탐정' 시리즈다. 월간 잡지 [소년 구락부]에 [[1936년]][* [[2.26 사건]] 발생, 본격적인 군부 통제 체제로 돌입] 신년호(1월호)부터 '[[괴인 이십면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소년 탐정단]]은 이 연재작 시리즈에서 등장한 어린이 탐정단이다. 그러나 다음해인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국민총동원령법(1938)이 발동하고 정부가 국민의 생활을 통제하게 되었다. 내무성은 출판사와 신문사를 검열을 하고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했다. 탐정소설은 범죄를 조장하는 반체제적인 것으로 문학이 아니라고 규정, 경찰과 내무성에서 몇 번이고 고쳐 쓰라고 명령을 받다가 나중에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일본정부가 간섭하자 잡지편집자는 위축되어 탐정소설의 집필의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소년 탐정 시리즈 역시 맥이 끊기지만 전후 1949년부터 연재를 재개했다. 전후에는 주로 탐정소설의 보급과 작가 발굴 등의 프로듀서 역할의 활동에 힘쓴 에도가와 란포였지만, 소년탐정 시리즈만은 이후 14년간 계속 썼다. 1939년 문고판 도서를 출간하던 중, 10년 전에 발표한 단편 「애벌레(芋蟲 이모무시)」(1929)[*스포일러 잡지 발표시 원제는 '악몽'.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사지가 잘린 채로 귀향한 정신이 피폐해진 전 육군 중위 주인공과 그로 인해 갈등하는 아내(주인공의 두 눈알을 손가락으로 눌러 터트려 실명시킨다)와 주변 인물의 심리를 그린 이야기.]가 문제가 되었다.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주인공이 전쟁 참전 군인이라는 이유로 "군인의 비참한 육체가 추악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사실로부터 불온하다. 처(妻)의 욕망이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져 있다."라는 이유로 검열에 걸렸고, 이에 「애벌레」가 삭제당하고 애벌레는 발행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 당시에 여관을 운영했는데, 극우선동 깡패들이 와서 여관을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후 내놓은 신작들이 대중의 평이 좋지 않았다. 검열 때문에 다룰 수 있는 작품 소재가 고갈된 점도 있고,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는 해외 확장이라는 국책으로 [[만주국]]이니 식민지 조선 등의 해외의 신천지로 이주가 가속화되어 성공의 꿈을 꾸는 [[성장물]]이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국가에 봉사하자는 소설이 인기를 얻고 군부의 환영을 받았다. 란포의 그로테스크한 소설은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 취급을 받았다. 란포는 점점 펜을 들 의욕이 사라졌다. "악서 취급에 게다가 무반응이라니, 자신감이 떨어진다. 이제는 나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밝혔다. 쇼와 16년(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을 정부가 마음에 안들면 중죄가 되는 법도 만들어졌다. 일본 전체가 전시체제가 되고, 란포의 모든 작품은 발행금지가 되었다. 원고 의뢰도 끊긴 란포는 도쿄를 떠나 지방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종전(패전)후 3개월 뒤인 1945년 11월, 란포는 다시 도쿄로 돌아왔다. 이 당시 일본 추리 문단은 망연자실 상태였다. 많은 동료 작가가 죽고, 소설을 집필한 의욕도 잃고 , 공직에서 추방당한 작가도 있고, 부부가 동반자살을 하려고 준비한 사람도 있었다. 한편, 출판업계는 출판이 자유화가 되어 발행을 재개하고 1945년에만 100개가 넘는 잡지가 창간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1946년 창간한 탐정소설 전문 잡지 [보석]이었다. 보석에서 장편소설의 연재를 의뢰받았지만, 란포는 거절했다. 대신 1957년에는 보석의 편집장도 맡으면서, 전후에는 창작 활동보다는 추리소설의 부흥을 위해 프로듀서의 역할에 힘썼다.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마츠모토 세이쵸]], [[야마다 후타로]], [[호시 신이치]], [[츠츠이 야스타카]]), 1947년에는 일본탐정작가클럽([[일본추리작가협회]])을 창설하고 1954년에는 에도가와 란포상을 창설하고, 각종 강연과 좌담회를 개최하는 등 추리소설의 발전과 보급에 큰 공헌을 했다. 오카야마 현에 있던 [[요코미조 세이시]]를 찾아가서 만나기도 하고, 1946년에는 일본에 [[환상의 여인]]을 소개하였으며, 이는 일본에서 꼽는 [[세계 3대 추리 소설]]이 되기도 했다. 그는 추리소설 작가이기 전에 추리소설의 열혈 독자 매니아여서 전후에는 영미권의 최신의 추리소설의 영어원서를 찾아다니면서 수집했다. 추리소설 수집가로도 유명해서 그가 살았던 저택에는 따로 큰 창고가 있었고 그 곳에는 약 2만 권의 장서가 있다. 2만 권이 전부 소설책이 아니라 범죄에 관련한 범죄심리학이나 형법에 관한 법률 등의 서적과 자연과학과 의학, 심리학같은 추리소설 집필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책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집했다. 그곳을 직접 찾아가서 취재한 일본 방송을 보면 지금의 현대 도서관 운영 시스템으로 영어 원서는 ABC순으로 정리했고, 누군가에게 빌려준 책은 누구 누구씨에게 대출해줬다는 명패를 그 책이 있던 자리에 꽂아두었다. 에도가와 란포는 거의 병적으로 정리벽(사소한 일까지 기록하고 정리정돈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한 예로 그는 해외 미스터리를 포함해서 소설에서 사용한 트릭을 총 821개의 항목별로 나누고 그 빈도까지 꼼꼼하게 조사했다. 그리고 1953년 잡지 「보석」에 발표한 뒤 나중에 개고한 「유형별 트릭 집성(類別トリック集成)」이란 평론을 평론집 「속, 환영성」에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의 추리 작가 [[김내성]]과도 [[https://www36.atwiki.jp/asianmystery/pages/145.html|친교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간 김내성과의 편지 내용을 소개한 内外近事一束 韓国の探偵作家, (1952)을 잡지에 게재했고, 그에게 들은 조선 시대의 재판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탐정소설 작가로 여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고양이는 알고 있다]]의 니키 에츠코는 란포가 발굴 소개한 작가이다. 제3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주었고, 여성이라는 점에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하여 추리소설에 관심이 없던 여성들도 추리소설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작가들과의 친교를 중요시해서, 자비를 들여 작가 80명을 초대해서 연회를 연 적도 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활동사진 필름이나 인터뷰 녹음에서 보여준 모습은,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한 작풍과는 달리 굉장히 사교적이고 유머스러운 사람이었다. 이상하게도 일본 미스터리 계에서 명성으로는 최고 수준에 꼽히는 작가임에도 한국에는 출간되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 [[요코미조 세이시]], [[마쓰모토 세이초]] 등은 속속 나오는 와중에 란포는 두드림 출판사에서 나온 단편 전집 3권만 있었고 장편은 거의 출간되지 않았다.[* [[동서출판사]]에서 나온 외딴섬 악마는 해적판. 2016년 2월, 검은숲의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에 단편 세 개와 함께 장편소설 <거미남>이 수록, 출간되었다. 한국에 최초로 정식 출간된 란포의 장편소설이다.] 란포 하면 괴기소설쪽이 유명한 만큼 한국에서 미스터리보다 더 안팔리는 단순히 호러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판단해서 상업성이 크지 않고 일부 매니아들에게만 어필을 하는 것으로 간주를 하는지도 모른다. 201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중편 <파노라마섬 기담>에 단편 <[[인간 의자]]>가 수록되어 정식 출간되었다. 북미에서도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은 일본내에서의 위상과 명성에 비해 거의 소개가 안되었으나 "인간 의자"만은 앤솔로지 등으로 알려졌으며 [[https://www.youtube.com/watch?v=4tywbmckYbk|단편 영화]]도 만들어졌다. [[이토 준지]] 또한 인간 의자를 바탕으로 단편을 만들기도 했다. 덧붙여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 [[에도가와 코난]]의 이름은 [[코난 도일]]에서 따왔고, 성은 란포의 필명에서 따온 것으로 유명하다.[* 작중에선 쿠도 유사쿠의 서제에서 아가사 히로시랑 의논하다가 란이 처들어와 코난을 발견하고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뒤에 코난 도일과 에도가와 란포의 책이 보여 즉석에서 지었다.] 같은 작품의 등장인물 [[모리 코고로]] 역시 란포가 창조한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에서 따왔다.(성씨 쪽은 [[모리스 르블랑]].) 사후 50주기를 맞아 [[후지테레비]] [[노이타미나]]에서 [[애니메이션/2015년 7월|2015년 7월]] [[란포기담 Game of Laplace]]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2016년 1월부로 사후 저작권이 완전히 끝나면서 아오조라문고나 아마존 등의 인터넷 도서관/서점을 통해 그의 작품을 무료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